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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계 취준생들에게

작성자
들은얘기가있어
작성일
2018-04-13
조회수
7308
좋아요 수
19
내 이야기를 조금 풀어보려고 해

누군가에게는 복에 겨운 걸로 보여질 수도 있겠고
누군가에게는 안타깝게도 보여질 수도 있겠고
누군가에게는 평범하게만 보여질 수도 있을 거야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한 가지야

내 이야기를 보고 힘냈으면 좋겠어




난 어릴 적부터 그림에 관심이 많았어, 만화영화도 좋아했고 철들 무렵엔 게임에 푹 빠졌었지

그레이트 다간, k캅스, 선가드, 포켓몬스터, 골드런, 파워레인저, 소년기사 라무, 바람의 나라, 어둠의 전설, 스타크래프트, 라그나로크, 디아블로2, 카르마, 퀴즈퀴즈... 너무 많아서 못쓰겠네

때마침 뉴스에서든 교과서에서든 앞으로 미래를 이끌어갈 산업은 디자인과 IT라고 적극적으로 홍보하기도 했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부모님을 설득했지

교과서와 신문을 스크랩하고 뉴스를 녹화하고 별의 별 짓을 다 했었어

설득한답시고 정말 말도 안되는 것들을 다 가져와서 근거라고 했던 것 같아. 못 이기는 척 부모님이 들어주신거지

못 미더워 하시던 어머니 소매를 붙잡고 미대입시학원에 갔어 내가 살던 도시에서는 미대입시학원이 한 군데 밖에 없었어 ㅋㅋ

낮은 성적이라도 잘 그리면 서울에 갈 수 있다.
디자인 인력이 많이 부족해서 취업이 잘된다.
하기에 따라서 대기업 못지 않은 돈을 벌 수도 있고 개인사업자가 되어 사장을 할 수도 있다.
영 취직이 어려우면 xx시 같은 도시에 내려와 미술학원을 운영해도 된다.

센세이션이었지 그림 그린다고 하면 가장 쉽게 수염기른 밥아저씨만 떠올리던 시기였으니까

어머니가 혹하셨던 건 낮은 성적이라도 잘 그리면 서울에 갈 수 있다는 부분에서 혹하셨던 것 같아




그 때 부터 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어

그 때는 석고데생에서 발상과 표현으로 넘어가기 직전이었던 때라
(아니면 시골이어서 그런건지)

고 1 내내 기초 도형 소묘와 석고 데생만 했었어
(이거 의외로 게임쪽으로 넘어올 때 도움이 많이 됬어)


학원비도 그리 비싸지 않았어 주 5일에 20만에서 30만 사이었거든 거기다 난 주말에만 다녔어서 10만원도 채 안됬었지
(고 1때는 10시까지 야자 필수였거든, 부모님 설득시키는 것보다 선생님 설득해서 조기귀가증 받는게 더 힘들었었어 별 수 없이 주말에만 다녔지)

고 2가 되고서는 정물수채화로 넘어갔어 학원도 주3일 다녔지 2학기 때부터는 건식(파스텔) 발상과 표현을 시작했고 습식(수채화), 혼식(둘 다)를 섞어가면서 했어


내가 자랑 아닌 자랑을 하게 됬는데

내가 의외로 공부를 잘 하는 체질이더라고 성적이 쭉쭉 오르니까 담임도(우리 땐 담탱이라고 불렀음)백지 귀가증 주면서 필요하면 알아서 쓰고 나가라고 할 정도였어ㅋㅋ

고 3이 되고 수능을 친 다음에 학원에서는 수능성적표를 받아갔지
언외사/과 평균 3등급 이상인 애들은 다 연계된 서울학원으로 가게끔 했어.

이 때 많이 힘들었지 수능 이 후 실기 특강 비가 너무 상상을 초월하기도 했고 월 60이나 받아쳐먹는 두 평 남짓한 홍대 앞 고시원에서 살면서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학원에서 그냥 매일 매일 그림만 그렸었어

고 몇 달 동안 4~5백은 들었을거야

그 때문에 서울로 가는 걸 포기하고 고향에서 실기를 준비하는 애들도 있었어

난 운이 좋았지 평균 2.3등급이라 30% 할인 받았거든
(수능 성적에 따라 학원비를 할인해주기도 했어 평균 1.2등급이던 여자애는 전액무료였어)




그렇게 열심히 해서 가나다군을 쳤어

두 군데 상향지원하고 한 군데는 실기를 칠 학교가 한 군데 밖에 남지 않아서 그냥 거기로 썼어

상향 지원이라고 말했지만 데셍이나 발상과 표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우리나라 탑급 미대였지

전공은 어떻게 선택했냐고?

그냥 경쟁률 보고 넣었어

시각디자인도 있었고 산업디자인도 있었어



지금까지 읽어왔으면 알거야 미대를 준비해오긴 했지만, 들어가서 뭘 할건지 그런게 전혀 없었어 그냥 막연하게 좋은 대학, 좋은 과만을 생각했지

내가 왜 미술을 시작했는지를 잊었었어

두 군데는 떨어졌어 후보로 붙긴했는데, 내가 지원한 곳은 그냥 후보면 떨어진 거였어 사람이 안빠지거든

결국 칠 데가 없어서 넣은 곳만 붙어서 거기로 갔지

아깝긴한데, 차마 재수할 용기는 안났어 돈도 돈이고 지칠 데로 지치기도 했고 또 한 군데 붙은 데도 인서울이긴 인서울이니까 굳이 재수할 필요를 못느꼈어

1학년 동안은 재밌었어 술도 마시고 담배도 태우고 용돈삼아 알바도 했지




군대에 가고 다시 전역했을 땐 세상 모든게 달라져 있었어



일단 집이 매우 힘들어졌어 경제적으로 건강적으로도
(대게 이 시기쯤 힘들어진 사람들이 많을거야, 내가 다녔던 과에도 군대 전역 이후로 힘들어진 친구들이 나 말고도 두 셋 정도 있었어)

동생도 공부를 잘했어서 좋은데 붙었는데, 집안 사정때문에 그 아래단계에 장학금 주는 곳으로 갔어

부모님 거동이 힘드셔서 내 동생 대학보내려고 모은 돈, 나 대학보내려고 모든 돈으로 생활해야만 했지 입원비 수술비 등등 모자라서 땡겨오기도 했어

이제는 용돈 삼아가 아니라 생계를 위해 알바를 했어야만 했어

대출받아 보증금 내고 알바로 월세, 생활비를 냈어



성적장학금은 꿈도 못꾸지

미대를 다녀본 사람은 알겠지만, 디자인과는 주3일 정도 학원 보조로 알바하는 애들은 있어도 시간 많이 들어가는 알바를 하는 애들은 잘 없어

과제에 시간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거든
(잘 사는 애들이 많기도 하고)

근데 과제에 쏟아야 할 시간을 알바에 쏟으니 퀄리티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어

공모전? 꿈도 못꾸지... 팀으로도 안껴줘 그냥 업혀가는거잖아



학원에서 일하고 돌아와서 술집 마감시간까지 일하다 겨우겨우 일어나서 학교가고 학과사무실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강의들어가고 그런 나날들이 반복이었어

학교생활 역시 힘들었어

나는 그저 '알바하는 애', '사무실 과돌이', '늘 피곤한 애'였지

나랑 같이 조를 하려는 애들도 잘 없었어

내가 뭐 시간을 내서 애들이랑 놀러를 가겠어 술을 마시겠어
잘나가는 선배들 똥꼬를 빨겠어 뭘 할 수 있었겠어

몇몇 선배들에겐 밉보이기도 했어

쟤는 뭘 하는데 매일 저렇게 피곤해하냐라고 물어보면 다행이었고 사교성 없는 애, 싸가지 없는 애, 아웃사이더, 디자인 열심히 안하는 애 뭐 등등...

그나마 군대가기전에 친했던 선배나 4학년이 된 몇몇 동기 여자애들, 비슷하게 전역한 동기 남자애들이 챙겨주는 것만해도 감사했지




그저 하루하루 버티는게 다였어

공모전 수상도 없고 학점도 출석빨로 간당간당 강의도 못따라가서 늘 안주서비스 주겠다고 하고 주말에 몰아배울 수 밖에 없었어

남들은 스터디니 학원이니 혹은 오랜시간 과제를 하면서 익힐 수 있었던 걸 그렇게 밖에 따라갈 수 밖에 없었지




중간에 꽤 오래 휴학도 했어 도저히 병행할 수가 없어서

그래도 시기가 좋았던게 한창 앵그리버드, 애니팡 등 모바일게임시장이 올라오던 때라 휴학생이어도 취직하고 돈을 벌 수 있었었어
(지금 업계보다 훨씬 더 악조건으로 근무했어.. 어후... )

휴학생이라 돈도...ㅋㅋㅋㅋ 연봉 얼마였는지 알아? 1600이었어 ㅋㅋㅋ
거기다 말만 정규직이지 다니는 내내 인턴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어 ㅋㅋㅋ
3개월은 무슨 개뻥카치고 앉았네 ㅋㅋㅋㅋ

근데 주말도 없고 퇴근도 없다? 주4일 야근 필수에 수목은 꼭 철야였어 ㅋㅋ

금요일만 정시퇴근이었지 퇴근도 마음데로 못했어 ㅋㅋ 지금이야 회식거부하는 분위기가 좀 있지만 그 때는 그냥 무조건 참여였어

솔직히 말하자면 말이지

회사에서 일하는 거보다 차라리 알바하는게 나았어 ㅋㅋㅋㅋㅋ




그래서 나왔어

주점에서 직원으로 일하는게 훨씬 났더라



그렇게 돈을 모았어

졸업은 해야겠다 싶어서 모은 돈 + 학자금 대출로 다시 남은 학기를 다니려고 했지


근데 어?


그나마 친분있던 선배 중 한 명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거야
(마침 복학시기가 비슷했어)

그림 열심히 그려서 게임업계로 진지하게 가볼 생각 없냐고 너 지금 학점도 별로고 공모전 수상도 없고 졸업하면 딸랑 졸업장 하나랑 병신같은 포폴밖에 없는데 어디 취업할 수 있겠냐고

같이 게임업계 가즈아!!

게임업계는 학점도 안보고 학벌도 안본다!! 공모전 수상? 그딴거 상관없으어!!
그냥 그림만 열심히 그리면 돼!!


난 내 얘기를 했지 휴학했을 때 다닌 회사말이야


그건 니가 포폴이 없어서 그래!! 딸랑 학과타이틀이랑 휴학생이란 신분만 가지고 어디를 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


아하 그런거구나


솔깃했어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생각보다 많은 그림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그림 퀄리티가 우으아할 정도로 높지도 않아보였거든
(그래 그 땐 그나마 게임업계 취업이 어렵지 않았던 때였어)

마침 미술을 시작하게 된 동기를 다시금 깨닫기도 했고 말이야

복학하고 전공은 대충 성의만 보이고 그림 공부를 다시 시작했어

캐릭터? 배경? 상관없었어 그냥 막 그렸지



헌데... 너무 빨리 바뀌는거야

원화 학원도 막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포폴형식들도 생겨나고 사람 뽑는 것도 아케이드에서 캐쥬얼로 막 바뀌고 그러는 거야

거기다 시지허브? 아트 소사이어티?였나 그런 것도 생기고 방사에 올라오는 그림들도 전반적으로 퀄리티가 한 달 걸러 막 올라가는거야


나는 못따라갔어

틈틈이 해서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어

억지로 억지로 졸업을 해서 게임업계 취업시장을 찾았을 땐 이미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바껴있었어


그렇게 많던 회사들이 다 사라지고 신입을 뽑는 회사는 찾기도 힘들었어

그간 열심히 해서 실력을 쌓았는데 나만 실력이 오른건 아니었어
회사들도 보는 눈이 높아지고 같은 취준생들도 다 실력이 올라갔어
유행도 너무 빠르게 바뀌었어


암담했지 허탈했고


나한테 같이 게임업계로 가즈아!! 했던 선배는 타이밍 좋게 취업했어

물론 나랑은 처지가 달라서 이미 그림 갯수나 퀄리티에서 차이가 많이 벌어졌었어


어쩔 수 없잖아 여기저기 넣어도 취업이 안됬어

다시 되돌아서 디자인쪽으로 지원을 넣었는데 이 역시 안됬어

인서울에서 고만고만한 대학에 허접한 포폴에 그저 졸업만을 위해 한듯한 졸업작품에 위에서 땡겨줄 선배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다들 각자 살아남기 바빴어



또 다시 뭐 돈벌이 생활로 돌아갔지


그나마 학교다닐 때보단 나았어 졸업장도 있고 이제 과제하랴 강의들으랴 시간 뺏길 일도 없었거든

조금은 홀가분했어


알바도 하고 직장도 다녔어

직장 다니다가도 가성비가 안좋다 싶으면 다시 알바로 돌아가기도 하고
알바하다가도 어디 붙었다 싶으면 직장을 다니기도 하고

좋은 직장도 있었고 안좋은 직장도 있었어
게임회사도 있었지


근데 오래간 회사는 없었어

내 포폴이 안좋았나봐 그랬겠지


스타트업도 있었고 8명도 안되는 소기업도 있었어

항상 최저임금이었고

급여가 밀리거나 파토나기 직전에 참여하게 되거나
회사 재정상 문제로 접은 곳도 있었어

1년을 넘어간 회사가 없었어


그냥 그렇게 몇 년 살았어

지금도 계속 알바를 하고 공부를 하고 포폴을 만들고 있어

간간이 서류 통과해서 면접을 볼 때도 있고 테스트에서 떨어지기도 해



누군가는 그런 말도 할거야

그렇게 몇 년이나 공부해도 니가 그 정도인건 니가 재능이 없는 탓이고 노력을 안해서 그렇다고 실력도 없는게 취직하겠다고 나대니까 그런거라고


기죽지마


난 이해해

몇 년도 같은 몇 년이 아니야

누군가에겐 1년이겠지만, 우리같은 사람들에겐 3년, 4년, 5년이 될 수 있어

나 같은 사람들, 너 같은 사람들 말을 안할 뿐이지 세상에 많아



되돌아 갈 수 없다면, 그냥 어떻게든 붙잡고 꾸준히 하는 수 밖에 없어

언젠가는 우리도 따라잡고 그들을 넘어갈 수 있을거야



거북이는 말이야

등딱지가 너무 무거워서 몸이 가벼운 토끼를 따라잡을 수가 없어

근데 그렇게 편하게 공부해온 토끼들이 한 눈 팔고 방심하거나 농땡이를 피울 때

우리는 따라잡을 수 있어

그리고 운이 좋아서, 기회가 생겨서
우리가 등딱지를 벗게 되었을 땐 토끼는 우리를 따라오지 못해

우리는 등딱지를 드느라 근성이 생겼거든

토끼들이 편한 것만 찾고 조금만 힘들어도 도망칠 때 우리는 신나게 추월할 수 있어


그러니까 힘내




아 물론

근성토끼들이나 근육질 캥거루는 못이겨

걔들은 그냥 답이 없어 다른 세상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게 편해

그냥 일반적인 토끼들 추월하는 걸로 만족하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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